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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상수훈인가?

【갈릴리 예수산책】 예수와 산상수훈

 

왜 산상수훈인가?

 

누군가 나에게 “신앙이 뭐냐?” 라고 물으면 나는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 신앙이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 거냐?” 라고 다시 물으면, “예수를 사랑한다면, 적어도 염치 있는 사람이라면,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다” 라고 답할 것이다. 이게 진지한 사람의 대답이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알아야 하고, 안다면 믿을 것이고, 믿는다는 것은 모방한다는 것이다. 모방한다는 것은 따라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 신앙의 폐해 중의 하나가 예수를 머리로는 믿으나 삶으로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를 나의 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은혜요 선물이며 기쁜 일이지만, 예수를 사랑하고 알아가고 믿고 따르는 제자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나, 그 다음 주님의 제자로 사는 것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에게 주어진 가장 부담스러운 말씀이다. 일생에 한 번쯤은 깊이 고민하고 묵상해 보아야 할 하나님 나라 가치의 세계이다. 

 

설교를 업으로 사는 목회자들에게 가장 전하기 싫은 본문이 산상수훈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복과 위로를 전하고 싶지, 십자가의 고난과 인내와 사랑의 윤리를 전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상수훈의 말씀은 매우 어렵다. 내용도 어렵거니와 무엇보다도 살아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읽는다는 것은 제자로서의 자기결단이 없이는 대면할 수 없다. 오히려 갈등과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며, 유일하고 보편적인 기독교윤리이다. 독일의 신학자요 목회자, 그리고 히틀러 암살작전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죽음을 맞은 본회퍼는 기독교 제자도의 근원을 산상수훈에서 찾았다. 그는 산상수훈을 읽고 내면이 깨끗해지고 반듯해짐을 경험했고, 무엇보다 힘의 원천을 얻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가 산상수훈을 읽고 남긴 말이다.

 

“나는 처음으로 성서에 이르렀다. 이미 나는 여러 번 설교를 했고, 교회에 관해서 많은 것을 보고, 이야기하고 글을 썼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고, 도리어 아주 난폭하고 순종할 줄 모르며 자기 위주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해방시켰다. 특히 산상수훈.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것은 커다란 해방과 같은 것이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3년 동안 가르쳤던 모든 말씀의 요약판이다. 예수님의 정신을 알고자 한다면 산상수훈을 꼭 공부해야 한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다. 윤리학자들은 산상수훈을 인간 윤리의 최고봉이라고 평가한다. 문학가들은 최고의 문학적인 담화라고 극찬한다. 톨스토이는 전쟁에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이 말씀을 읽고 절대평화주의자가 되었다. 간디는 신앙의 그리스도는 믿지 않았지만, 평생 예수님을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고 산상수훈을 자신의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았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산상수훈을 자신의 정치철학으로 삼고 나라를 통치해 보고자 노력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어느 여성 스님이 『산상수훈』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러시아 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산상수훈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던 인류 보편적인 화두이자 탁월한 가르침이다.  

 

산상수훈은 어떤 성인군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깊이가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어렵고 난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렵다는 것은 따라서 살기 힘들다는 것이고, 난해하다는 것은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장 순종하지 않는 말씀이자 은근히 회피하고 싶어하는 교훈이 산상수훈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수훈을 대면하지 않고는 기독교적 삶, 기독교적 가치관, 기독교적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예수 가르침의 정수인 산상수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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