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갈릴리 예수 산책】 소금과 빛 ❶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행위가 아니라 존재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명령 형태로 되어있다. 그런데 그 명령이라는 것이 두 가지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행위 명령’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명령’이다. 대부분이 행위 명령인데, 주로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마라’이다. 그런데 존재 명령은 아주 드물게 딱 두 번 나온다. 바로 팔복과 소금과 빛에 대한 말씀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은 가난하라는 말이 아니라, 가난함이라는 존재 자체를 행복하다고 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는 말 또한 존재 자체에 대한 단호한 선언이다. 그렇게 있어야 한다는 존재 명령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존재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존재 명령은 행위 명령보다 근본적이고 선재적이다. 예수님은 기가 막히게도 산상수훈을 펼쳐 가실 때, 대부분 너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행위를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지만, 그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너희가 누구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누군지를 알아야 하고,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내 앞에 있는 너희들, 이 한심한 무리들, 못난 제자들, 아무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인간들, 아무 것도 아닌 인간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는 자기정체성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선포하셨다. 소금이 되라고 했다면, 그것은 행위다. 그러니까 원래 나는 소금이 아닌데 소금이 되려고 굉장히 애쓴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다. 그냥 너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희는 소금이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원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이미 빛이요 소금이다. 즉 너희는 ‘무엇을 해서’ 소금과 빛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미 소금과 빛이라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영향력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소금과 빛이 존재만으로도 영향력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마치 우리는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어떤 행위에서 나오는 줄 안다.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영향력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말씀이다. 우리는 어떤 행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신 것이다.
소금이라고 하는 존재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빛이라고 하는 존재가 영향력을 끼친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었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소금이 되어서, 빛이 되어서 세상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소금이 자신을 소금으로 알고 소금으로 그냥 사는 것, 내가 빛인데, 그냥 빛인가 보다 하고 그냥 빛으로 살면 되는 것, 그것이 영향력이다. 다소 말장난 같지만 도대체 예수님은 왜 우리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소금이라고 하면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아, 소금이라... 과학적으로 소금은 음식을 짜게 하고 부패를 방지하지. 바닷물에 소금 성분이 3퍼센트만 있어도 짜지... 소금이 없으면 사람은 탈수가 나서 죽게 되지...” 소금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머리 속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염두에 두신 소금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에 뿌려진 소금이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에 넣는 소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제물 위에 뿌리는 소금이다. 레위기를 보면, 모세는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릴 때 항상 소금을 칠 것을 명령한다. 제물이 썩는 것을 막고 변하지 않게 하는 소금이다. 에스겔의 예언서를 보면, 아기가 태어나면 배꼽 줄을 자르고 물로 씻어주고 소금을 뿌리고 보자기로 싸라고 하는데, 여기서 소금을 뿌린다는 것은 아이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는 재료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제사의 성물들을 제사장들이 먹을 때, 여기에 소금이 들어가 있다. 바로 희생제물 속에 들어있는 소금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변하지 않는 소금언약”이라 선포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뜻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금언약이라는 말을 잘 쓴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한 발 더 나아가 이 소금을 예수님 자신과 동일화 하신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셨다. 이 떡은 성소의 진설병 떡을 떠올리게 하고, 그 떡 안에는 소금이 들어있다. 소금이 들어있는 떡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은 곧 소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소금인 것처럼 너희도 소금이라고 확장하신다.
그러므로 소금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부패하는 것을 막는다. 우리를 정결하게 해준다. 변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맛까지 낸다. 이것이 영향력이다. 빛 또한 마찬가지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다. 내가 빛이기 때문에, 너희도 빛이다. 예수님이 빛이기 때문에 그의 제자인 우리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빛이다. 이미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