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복의 패러다임을 여시다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 – 팔복 ❶
새로운 복의 패러다임을 여시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성경의 많은 책들을 보면 거의 다 복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에게 떠날 것을 명령하시면서 네 가지의 복을 선포하셨다. 자손의 복, 땅의 복, 명예의 복, 인관관계 형통의 복을 주시면서 아브라함 자신이 곧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가나안 정복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땅의 복과 인간관계의 복을 먼저 주셨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와 기도를 모아놓은 시편을 시작하는 1편이 복의 선언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는 항상 복을 주시고 시작하신다. 사람은 일을 시키고 월급과 보너스를 주지만, 하나님은 월급과 보너스를 먼저 듬뿍 주시고 일을 시키시는 분이다. 산상수훈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부담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말씀하시기 전에 복을 먼저 선포하신다. 그것도 행복할 것을 말씀하신다. 특별히 인간의 깊은 내면의 마음을 파고들어서 고정 관념과 편견을 뒤집은 첫 번째 말씀이 바로 팔복 선언이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구약성경에서 습관적으로 이야기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복의 관념 자체를 완전히 파괴시켜 버리신다. 새로운 차원의 복의 세계를 연다.
그럼 복이란 대체 무엇인가? 특히 성경은 복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인간이 세상을 살아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힘이 필요하다. 하나는 자력이라고 하고 또 하는 타력이라고 한다. 자력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을 말한다. 체력, 지력, 학력, 매력, 재력 등 자기가 힘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 힘을 얻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돈을 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자력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이럴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것을 타력이라고 한다. 타력은 누군가의 도움에서 오는 힘을 말한다. 누군가의 후원, 지지, 응원 등이다. 어렸을 때는 우리는 부모님의 전적인 타력에 힘입어 산다. 자라면서 선생님, 선후배, 친구 등 수많은 타자의 도움을 받는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이 타력의 존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이 절대적 타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그 하나님의 대표적인 타력의 사건이 창조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다. 성경은 자기의 노력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의 타력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으며, 세상을 창조할 수 없다.
성경은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하나님의 타력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 걸쳐 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위해 복을 주시는 분이다. 히브리어로 ‘무릎을 꿇다’는 뜻의 ‘바라크’라 하고, 헬라어로는 ‘좋은 말을 하다’는 뜻의 ‘율로기아’ 라 한다. 두 단어를 묶어서 풀어보면, 내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축복’이라고 한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좋을 말을 하는 것을 ‘송축’ 또는 ‘찬양’이라고 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좋은 말하시는 것을 ‘강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민수기를 보면 내 이름으로 사람을 축복하라고 하신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축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