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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말씀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 편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말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있는 산상수훈을 읽어보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 모세의 율법은 행위로서의 간음, 행위로서의 살인만 하지 않으면 의로운 거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에서의 간음, 마음에서의 살인을 금한다. 원숭이 널뛰듯이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는 인간의 마음을 정조준하신 것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 미움과 증오의 감정에 휩싸이는 인간들에게 그게 살인이라고 선언하신다. 순간 순간 음욕이 머릿속을 맴도는 남자들에게 간음한 자라고 단언하신다.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말씀의 세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차라리 모세가 더 낫다고. 계명을 다 지키지는 못해도 하나님이 제시하신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고, 그 기준과 우리의 삶에 어떤 괴리가 있는지도 알 수 있는 것이 율법의 세계다. 그리고 지키면 되니까 보람도 있다. 십일조는 드리면 되고, 금식도 하면 되고, 안식일은 지키면 된다. 보람도 있고 성취감도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기준이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 특히 마음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파고든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곧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포해 버리신다. 이 부담감을 이길 수가 없다. 우리는 거기서 절망감에 빠진다.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다 드러내 보이신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보람도, 성취감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일도 없다. 은밀하게 기도하는데 누가 알아줄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하는데 누가 나를 선하다 인정할까?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니, 아무도 알 수 없게 하라고 하시니 자기중심성이 강하고 인정욕구에 목마른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허탈함만 줄 뿐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산상수훈의 말씀을 접근하는 통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율법으로 접근하면 모두 절망한다. 율법으로서 이 말씀을 이해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생각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실족한다. 새로운 통로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은혜라는 통로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복음의 통로다. 산상수훈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이 요구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

 

결국 산상수훈의 말씀을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이고 성령의 능력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잘 지켜서 천국에 들어갈 생각이랑 아예 버려야 한다. 이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들,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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