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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 폭력대응론 2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 편

 

약자가 강자에게 제대로 보복하는 법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38-42)  

 

사실 예수님이 이 말씀에서 주목하신 것은 원수 갚은 일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원수 갚은 일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악을 나에게 행하는 사람에게 내가 똑같이 악을 행해서 똑같이 악한 자가 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선으로 그것을 갚아낼 수 있겠느냐? 항상 너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선을 지켜낼 수 있겠느냐? 이것에 대한 도전이다. 한 대 맞았을 때 나도 한 대 때려서 같이 악해지겠느냐? 아니면 그냥 한 대 맞아주고 나의 선을 지키겠느냐? 그리고 상대방이 받을 악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갚으시도록 보복의 주체를 하나님께 넘길 수 있겠느냐?

 

어차피 이론적으로 동태복수법을 지킨다 하더라도 피해자인 너 또한 악한 자가 될 것이고, 실제로 피해를 받은 만큼 돌려받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예수님은 너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복은 하늘에 맡기고 너는 가해자를 향해 보복행위를 멈추라는 말씀이다. 우리로서는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윤리적으로 가장 논란이 많은 이유다. 악한 자의 폭력에 대항하여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수님이 이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신 것은 우리까지 악한 자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저 맞고만 있으라고 하신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내가 악한 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악한 자를 당혹하게 할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악한 자의 폭력에 속절없이 당하라고 하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기가 막힌 방법으로 악한 자를 정신적으로 제압하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말씀이다. 다시 말해 약자가 강자의 폭력에 대응하는 전략적인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다.

 

유대 사회에서 왼손은 부정하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는다. 상대의 오른쪽 뺨을 치려면 오른손등으로 쳐야 한다. 그런데 손등으로 친다는 것은 상대방을 노예로 낮추어 본다는 뜻이다. 강자가 오른손등으로 약자의 오른뺨을 때렸을 때, 약자가 왼뺨을 들이대면서 더 때리라고 하면 강자는 손등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때려야 한다. 그 순간 둘은 대등한 관계가 되어 버린다. 강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난한 자의 겉옷은 밤이 지나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에게 겉옷은 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탐욕스런 부자들은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겉옷을 빼앗으려 한다. 그때 너는 속옷까지 벗어주고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나서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발가벗은 몸을 보고 험담한 노아의 아들 함이 저주를 받은 사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속옷까지 내어주는 순간 탐욕스러운 부자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최소한의 체면이라고 있는 부자라면 도망칠 것이다.

 

당시 로마 군법 중에는 식민지 백성을 차출하여 5리(2Km)까지 짐을 옮기게 할 수 있는 법이 있었다.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5리 이상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5리까지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법 테두리 밖이다. 억지로 5리를 끌려가느니 일부러 10리(4Km)를 가주라는 것이다. 그 순간 군인은 군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식민지 사람들에게 괜한 갑질을 했다가 감옥 가게 생겼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약자의 기가 막힌 대응법은 약자가 강자가 되지 않고도 강자를 이기는 전략이요, 선한 자가 악한 자가 되지 않고도 자신의 선을 지키는 전술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상상해 보면, 그야말로 코믹스럽기 짝이 없다. 약자가 왼뺨도 때려달라고 얼굴을 내미는 것이나, 겉옷을 빼앗기자 사람들 앞에서 속옷까지 훌렁 벗어버리는 일이나, 5리를 가자는데 10리까지 굳이 가주는 모습은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의 지혜이자 보복법이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실습을 내보내시며 하신 말씀이 이와 같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이리떼 속에 양으로 사는 것이다. 양이 여기서 살아낼 방법은 오직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밖에 없다. 지혜는 나를 ‘약’하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순결은 나를 ‘악’하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예수님은 약자가 강자의 폭력을 당할 때, 선한 자가 악한 자의 악을 대면할 때,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셨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약자는 희생하라는 이상주의 말씀이 아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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