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집안 경제력과 내력
예수님 시대의 배경으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필 것이 있는데, 바로 경제이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경제력은 어떠셨을까? 예수님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살았을까? 당시만 해도 1퍼센트의 왕과 총독, 그리고 대제사장이 제일 윗자리에 있다. 그다음 엘리트 그룹이 있는데 고위 공무원, 고위군인, 제사장, 그 밑에 상인들이 있고, 특별히 노예였으나 성공해서 권력과 부를 누린 사람들까지 15퍼센트의 상위 그룹이다. 이들은 유대 땅의 75퍼센트를 소유했다. 사두개인으로 분류되는 제사장들이 소유한 땅도 막강했다. 상위 15퍼센트 밑에는 나머지 대다수를 차지하는 70퍼센트의 농민들이 있고, 그 밑에 공인 즉 장인들이 있다. 일종의 기술자 계급인데 목수가 여기에 들어간다. 마지막 최하층 바닥경제 10퍼센트를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용직 노동자, 거지, 떠돌이, 매춘부, 산적들이다.
예수님의 집안은 어느 계층이었을까? 바닥 30퍼센트에 속한 목수의 가문이다. 지금은 목수가 건축예술가의 반열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경멸적인 직업이었다. 그리스어 ‘테크톤’은 ‘목수’라는 뜻의 ‘카펜터스(carpenters)’로 번역되어 나무를 다루는 목공으로 오해되는데, 사실은 돌을 깎고 다루는 석공이다. 어쩌면 건축가라는 뜻의 ‘빌더(builder)’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예수님이 자주 말씀하신 건축가의 버린 돌 비유를 보면 예수님 자신의 직업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헤롯 안디바스가 나사렛 북쪽 세포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하면서 건축붐이 일어났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성경에 아버지 요셉과 어린 예수님이 목공소에서 나무를 깍는 그림은 사실과 다른 이미지다. 아무튼 예수님은 결코 좋은 경제적 환경에서 태어나신 분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낮은 계급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낮은 계급의 출신이라고 해서, 그리고 가난한 자의 친구라고 불려졌다고 해서 그를 절대적 극빈층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시각이다. 적어도 예수님이 어린 시절 살았던 갈릴리 나사렛이란 곳은 남쪽의 유대 지방에 비해 농업에 훨씬 적합한 풍토의 땅이었고, 전통적인 농업체제가 잘 이어져 내려온 곳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절대적 빈곤계층보다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빈곤층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최소한 가족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자영소농 집안 정도로 추측한다. 모세율법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 시대를 읽어내는 판단력,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력,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적 상상력은 가난한 갈릴리 시골 농촌의 삶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학습과 사색의 여유를 가질 정도의 경제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만일 예수님이 하루하루의 생존마저 걱정해야 하는 극빈층의 자녀였다면 그의 위대한 하나님 나라 사상과 가르침이 가능했을까?
예수님에게는 요셉과 마리아라는 부모님이 있었다. 아버지 요셉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마리아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여러 자녀들을 키우면서 나름 오래 살았다. 예수님은 8남매의 장남으로 많은 동생들이 있었다. 동생 중에는 훗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으로 인정받았던 사도 야고보가 있다. 아버지 요셉은 유다지파의 후손이었다. 무슨 말인가? 이스라엘에서 유다지파는 다윗과 솔로몬을 배출한 족속이다. 왕족출신이다. 우리가 한때 전주 이씨 하면 조선왕조 집안이라 하여 왕족으로 여겼던 것과 유사하다.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갖고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의식을 가진 집안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쇠락하여 그리 잘 살지는 못했지만, 나름 명망 있는 가문의 후손이라는 자존감을 가진 집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