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까?
【갈릴리 예수산책】 예수와 아버지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까?
구약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도할 때나 예배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는가? 아니다. 그런 것 같지 않다. 적어도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직접적으로 부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말은 있는가? 그건 많다. 바로 여기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이 아버지라는 호칭을 처음 쓰셨다며 환호한다. 이른바 예수님은 아버지 혁명가라고 극찬한다. 반면, 어떤 학자들은 구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구절이 많다며, 예수님이 처음 부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아버지로 설명하는 것의 차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로 설명하기는 했다. 출애굽기 4:22을 보면,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아버지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40년 후, 모세의 고별설교인 신명기 후반부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임을 이렇게 묘사한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 32: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시고 세우신 아버지다.
시편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한 것이 두 번 정도 나온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편 68:5).” 그리고 시편 89:26에서는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고아의 아버지시고, 나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조금 간접적인 표현이지만, 하나님의 연민과 긍휼의 속성을 아버지에 비유한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예언자들에게 가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는 강도가 좀 더 강해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 31:9).”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장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자 관계로 직접 표현한 말씀이다.
이사야는 미래에 오실 메시아의 이름을 영존하는 아버지라 불렀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이사야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우리를 인정해주고, 우리를 구속하신 아버지라고까지 설명한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사 63:16).” 나아가, 이사야는 여호와는 우리를 지으시고 만드신 토기장이 아버지, 곧 창조주 아버지로까지 말한다.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 64:8).”
사실 이상에서 언급한 정도가 구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구절 전부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구절은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지만, 결코 많지는 않다. 그것도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도구로서 아버지라는 비유로 사용될 뿐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직접적으로 부르는 표현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적어도 십계명과 토라를 익힌 유대인들이라면 하나님 이름 자체를 부르기를 꺼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