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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서는 안 될 그 이름, 야훼 하나님

갈릴리 예수산책 – 예수와 아버지 2

 

불러서는 안 될 그 이름, 야훼 하나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무서워했다. 왜 그랬을까? 표면적으로는 십계명의 3계명 때문이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명령이 워낙 중요했기 때문이다.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명령은 ‘함부로’ 혹은 ‘잘못’ 부르지 말라는 것이지, 아예 부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부르다 보면 잘못 부르게 될 게 뻔하다. 가급적이면 아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게 낫다 싶은 것이다. 자연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 자체를 부르지 않는 전통을 지켜오게 된다. 부르다 죄 짓느니 아예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십계명에서 그렇게 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피상적인 답변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좀 더 신학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게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름을 갖는 순간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다. 이름을 갖는 순간 그 존재는 어딘가에 종속되기 마련이다. 이름이란 누군가에 의해 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물은 이름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존재물의 이름을 통해 본질을 알게 되고, 우리는 존재물의 본질을 보고 이름을 짓는다. 아무튼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우주의 질서 속에 있다는 뜻이고, 그 질서 안에서 규정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질서 속에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이름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고, 제한할 수 없으며, 나아가 판단할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름을 지어 정의할 수 없는 분이다. 이름을 짓는 순간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일 수 없다. 우리 같은 인간에게는 이름이 있다. 만물의 사물들은 모두 이름이 있다. 그들은 존재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존재물을 만드신 분이시기에 이름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기껏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은 존재 자체, 혹은 궁극적 근원 정도다.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그토록 부르지 않으려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름 위의 이름이며, 존재 위의 존재이며, 근원 중의 근원이시다. 인간의 세 치 혀로 표현할 수 있는 분이 아님을 일찌감치 자각한 사람들이다. 특히 구약 후반부 바벨론 포로시대를 지나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목욕하고 쓰는 전통이나, 대제사장이 7월 대 속죄일에 단 한 번 부르는 것 외에는 금지시키는 규례 등이 그러하다.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고유명사로 부르는 것이 너무 송구스러워 ‘아도나이’라는 소유격 대명사로 쓴 것도 그렇다. 그러나 ‘나의 주님’을 뜻하는 이 말도 부담스러워 ‘아도나이’ 어간에 ‘이름’을 뜻하는 ‘쉠’을 붙여서 ‘아도쉠이라 하여 ’나의 주님의 이름‘이라고 거리두기를 하여 불렀다. ’야훼’는 너무나 부르기 부담스러워서 네 철자 히브리어 자음 ‘YHWH’에다 아도나이의 히브리어 모음 ‘e, o, a’를 섞어서 ‘YeHoWaH’를 만들어 불렀는데, 이것이 한글식으로는 ‘여호와’가 되었다. 심지어 영어권에 있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God’라 쓰지 않고 ‘Gd’라고 쓸 정도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불러서는 안 될 이름이었다. 창세기에서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창 32장)”며 가르쳐 주지 않으신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할 때 기껏 하시는 말씀이 ‘네 조상의 하나님’ 정도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실 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전부였다. 이름 자체를 계시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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