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와 상관있을 것 같은 예수의 메시지
갈릴리예수산책 : 예수와 정치
정치와 상관있을 것 같은 예수의 메시지
지난 주에 언급한 내용들은 예수님이 정치와 무관하게 살았던 것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은 비정치적인 행보만 걸어가셨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속마음이야 정치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을지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행위와 언어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쳐질 여지가 많았다. 설령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미 정치적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한 행동과 언어가 많았다는 뜻이다.
사역 초기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을 때 사탄이 던진 질문 자체가 정치적 유혹이었음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제자도에 대해 가르치실 때 이런 극단적인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검이라는 것은 쪼개는 무기다. 둘로 분열시킨다. 아버지와 아들을 쪼개고, 어머니와 딸이 불화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라선다. 정치의 속성이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작별할 각오를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분열과 갈등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예수라는 분의 사상과 가치를 놓고 사람들은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서로 싸울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과 예수를 쫓아내는 사람들로, 예수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예수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갈라질 것이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가족들을 불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 사이도 분열시켰고, 심지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갈라놓기까지 했다. 한 사람의 메시지와 행동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는 말은 곧 정치화되었다는 의미다. 예수님의 ‘검’ 발언은 매우 정치적 메시지이다.
심지어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신 후 제자들에게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36절)”고 말씀하신다. 마치 전쟁준비에 돌입할 것을 촉구하는 듯한 비장한 발언이다. 저항하고 투쟁할 것을 독려하는 지극히 정치적 선언이다. 물론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실제로 검 두 개를 내어 놓았을 때는 오히려 족하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거두신다. 실제로 전쟁을 하자고 하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주 이해하기 곤란한 장면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검을 사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예수님이 결코 정치적 관념이란 전혀 없는 순진한 시골 청년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무리들에게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56절)”고 따져 물으신다. 자연의 이치는 경험적 통계로 잘 꿰뚫어 보면서, 시대의 흐름은 분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탄식이다. 시대를 분별한다는 말은 깊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의 흐름을 읽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대의 정치적 흐름에 대한 감각을 가질 것을 촉구하시는 것이다. 시대를 분별하는데 정치적인 맥락을 모르고서야 어찌 분별한다 하겠는가.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결코 정치와 무관하게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오히려 정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