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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논쟁 1 : ”금식은 때가 있으며 자연스러워야 한다“

갈릴리 예수산책-논쟁편

 

금식논쟁 1 : ”금식은 때가 있으며 자연스러워야 한다“

 

성경에서 금식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 욕구인 식욕을 극단적으로 억제하여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특별한 영적 행위다. 육을 죽임으로써 영을 살려 하나님께 긍휼을 얻고자 하는 영적 소통의 방법이다. 금식기도는 영을 맑게 하고 예민하게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확실한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금식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 금식한 이후, 어떠한 규칙적인 금식도 하지 않으셨다. 마가복음 2:18~22과 마태복음 9:14~17을 보면, 평소에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비난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은 기본적으로 하루 1회 금식, 일주일 금식, 일주일 2회 금식, 바벨론에 나라를 빼앗긴 5월과 7월 금식 등 여러 가지 금식기도 전통을 지켰다. 자신의 굶주린 배를 움켜잡아가면서 하는 기도이다 보니 웬만큼 자기 육체를 포기하거나 꺾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기도다. 그래서 아무나 하지 못한다. 특별히 영적으로 열정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 되었고 자랑이 되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깨셨다. 복음서에서 금식논쟁은 마태를 부르시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예수님의 식사는 누가 불러주면 그곳이 식사자리이고, 함께 먹는 상대를 가리지 않으셨으며,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정결예식도 지키지 않으셨다. 그래서 당시 거침없이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즐기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마 11:19)“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붙여주었다. 특히 금식에 철저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사해 주변 동굴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에세네파 출신의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절제한 듯 보이는 음식 탐닉적 행위가 낯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급기야 요한의 제자들이 시비를 건다. 처음에는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 같은 편인줄 알았다. 자신들의 스승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친하여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로 옮겨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금식을 놓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처럼 금식을 자주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스승부터 아무도 금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예수님은 금식하는 걸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묻는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금식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때가 되면 한다. 금식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금식할 일이 생기면 그때 한다.“ 금식은 정해진 날에 하는 의무나 규칙이 아니다. 금식은 슬퍼할 일이 생길 때 하는 특별한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인가? 예수 자신이 죽는 날이다. 그 날이 금식하는 날이다. 예수님이 말하는 금식의 때는 이슬람 라마단처럼 정해진 규칙에 맞추어 수행하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스승인 예수가 십자가에 끌려 잡혀가는 날, 그 슬픔의 날에 애곡하며 금식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있어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하늘나라 잔치의 기간이다. 금식할 때가 있고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 때나 규칙을 정해서 마음에도 없는 금식을 억지로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억지로 곡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먹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날이 오면 그때 금식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첫 가르침이다. ”금식에는 때가 있으며, 그 동기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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