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이방인을 위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태복음에 이어 AD 90년경에 누가복음이 나온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하고는 그 분위기에서 완전히 다르다. 누가는 의사였다. 그는 누가복음만 쓴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도 썼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친구이자 동역자이다. 바울과 같이 다녔는데, 누가의 관심은 전혀 유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독교를 유대교의 분파로 머물게 할 뻔했던 것을 세계 종교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사도 바울이다. 바울이랑 같이 움직였던 사람이 누가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사실 마태복음은 그냥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 즉 나사렛 예수파로 끝나길 바랐다. 최초의 교회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가 바로 그랬다. 베드로도 유대인으로서 살다가 죽을 거라 생각했지, 자신들의 교회가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자리매김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것을 깬 사람이 바로 바울이고 누가다. 누가복음은 완전히 이방인들이 읽기에 좋게 되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라든가, 돌아온 아들의 비유 등 이방 세계의 누가 들어도 재미있을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마가와 마태와 누가는 기본적으로 마가의 관점으로 보았다고 해서 ‘공관(共觀)복음’이라고 한다. 같은 관점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마가복음에 나와 있는 661개의 문장 중에 600개가 마태-누가에 다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을 펼쳐놓고 가지를 쳤을 때, 유대쪽으로 뻗은 책이 마태복음이고, 이방 헬라세계 쪽으로 주목한 책이 누가복음이다. 마태복음이 국내적 지평이라면, 누가복음은 국제적 지평이다.
마가복음의 661개 문장 중에 600개가 마태와 마가에 들어가 있고, 마가에는 없고 마태하고 누가에만 있는 게 200개 정도가 된다. 이것을 앞에서 말한 Q자료라고 하는데, 일종의 어록집이다. 마태와 누가에 들어가서 마가복음의 원본을 개정 증보해서 펼쳐낸 것들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관점은 셋이 같다.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같다는 말이다. 마태복음의 경우는 마가복음에 없는 것 중에 산상수훈이 3장이나 들어가 있다. 마태복음하면 산상수훈이 중요한데, 마태복음만의 독특함이다.
무엇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은 성령의 인도에 따른다. 누가는 이미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성령을 체험한 사람이었다. 누가복음에 이어 사도행전까지 쓴 누가로서는 예수님의 모든 일들이 성령의 역사요 열매들이다. 누가복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예수님의 행적이라면, 사도행전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발자취다. 누가복음이 성령에 의한 예수운동의 역사라면, 사도행전은 성령이 주도한 교회운동의 역사이다. 팔레스타인 작은 지역에서 시작된 예수운동은 제자들을 통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도록 퍼져나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누가복음에서는 제자가 없고 사도가 있다. 누가에게 있어서 제자들은 더 이상 좌충우돌 못난 제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복음의 핵심을 깨달았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성숙한 사도들이다. 그들은 이미 교회의 지도자들이며, 성령의 능력을 받았으며, 그리스도를 목숨을 걸고 증언할 마르투스, 즉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