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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 :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시다“

보편성 :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시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 언어의 특징으로 자명성, 심판성, 공개성, 존재성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볼 특징은 보편성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소통하는 방법이 보편적이었다는 뜻이다. 사실 예수님처럼 언어를 쉽게 사용하신 분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서민의 언어를 쓰셨고 대중적으로 가르치셨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아무리 귀하다고 한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전달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예수님께 고민이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을 놓고 문자 하나하나를 설명해야 하나? 논문이나 책을 써서 발표해야 하나? 문맹률이 80퍼센트가 넘는 당시 환경에서 누가 책을 볼까? 볼 수 있다 한들 집값보다 비싼데 누가 사서 볼까? 가난하고 무식한 서민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쉽고, 간단하고, 재미있게’ 풀어줄 수 있을까?

 

예수님이 선택한 것은 비유(parable)였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에게 있어 비유는 창세로부터 감추인 하늘의 비밀을 드러내는 유일한 언어였다. 깊이 숨겨져 있던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여는 계시의 언어다. 그러나 그 계시는 쉬운 것 같지만 아무나 깨닫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비유란 무엇인가? 비유 속에는 ‘은유(metaphor)’와 ‘이야기(story)’가 있다. 은유란 ”한 사물로부터 다른 것으로 건너서 나르는 것“이다. 혹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른바, 말로는 이것을 말하는데, 뜻은 저것을 가리킨다. 바로 이 은유적 진리를 이야기라는 보따리에 담아 풀어내는 것이 비유다. 예수님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두 가지였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까? 배우지 못한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내용과 형식의 문제였다. 하나님 나라의 내용을 어떤 형식에 담아 전할까? 그런 면에서 비유는 두 가지 고민을 동시에 해결하는 수사학적 묘수였다. 하나님 나라의 내용을 이야기라는 형식 속에 담아 전하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는 모두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구나’‘,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열매를 맺는구나’’, ‘‘사람의 마음은 여럿이구나’’를 깨닫는다. 겨자씨와 누룩 비유를 들으면서 ”하나님 나라는 자라는구나“, ”하나님 나라는 변하는구나“, ”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구나“를 알게 된다. 달란트 비유를 들으면서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른 재능을 주었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는구나“, ”언젠가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구나“ 하며 무릎을 친다. 돌아온 아들 비유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은 아버지구나“,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기다려주시는구나“를 자각한다. 

 

이야기 자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소재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언어가 가리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진다. 심지어 자신이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의 본질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결코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이다. 비유야말로 예수님의 언어 소통학의 결정체다. 어렵고 추상적인 본질을 그렇게 쉽게 풀어내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엄청난 양의 지식과 이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여기에다 그 통찰을 이야기라는 세속적인 언어의 놀이판에 올려놓고 ‘간단하고, 쉽고, 재밌게’ 풀어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당대 최고의 언어철학자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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