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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와 치유의 차이

치료와 치유의 차이

 

예수님은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하셨을까? 그분의 치유는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힐링과 어떻게 다를까?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치유는 전인적이고 유기적이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분설과 영과 혼과 육으로 구분하는 삼분설이 있다. 크게 이분설을 가지고 보면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영적이고 정신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과 육체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로 나눠 볼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병이란 크게 영혼의 질병인 귀신들림과 각종 육체적 질병들로 나타난다. 복음서는 귀신이 들려서 간질과 같은 육체적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영혼의 문제가 원인이 되어 병이 되었다고 보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귀신과 상관없이 그냥 손이 마르거나 중풍에 걸리거나 하는 것처럼 독립적으로 보는 기록도 있다. 즉 귀신에 들려서 간질이 생기기도 하지만, 단순히 병이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귀신에 들렸건(영적 질병),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로 마음이 병들었건(정신적 질병), 단순히 몸의 어디가 망가졌건(육체적 질병), 예수님의 병 고침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모두 아우르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전인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전인적인 병 고침을 일컬어 치유(healing)라고 한다. 그래서 치유는 치료(cure)와 다르다. 치유는 치료의 차원을 포함하면서도 초월하는 행위다.

 

치료는 영과 혼과 육을 담고 있는 인간의 몸(body) 중에서 특정한 부분에만 집중하여 고치는 행위다. 전문적인 의사들이 고치는 행위를 치료라고 하지, 치유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리치료가 하지, 물리치유라 하지 않는다. 정신과 치료라 부르지, 정신과 치유라 부르지 않는다. 외과치료라 말하지, 외과치유라 말하지 않는다. 치료행위란 해당 부위의 고통만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는 것 자체는 치료다. 손 마른 사람의 손을 펴주는 것은 치료다. 그래서 의사들을 치료자라 부르지, 치유자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치료를 포함하면서도 치료를 초월하는 분이다. 치유는 영과 혼과 육의 모든 부분을 회복하는 행위다. 특히 예수님의 고침은 특정 부위의 치료로 시작하여 영혼육 모든 부분의 치유로 끝나셨다. 예수님은 단순한 육체의 치료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여는 영혼의 회복까지 끌고 가신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치유자라 부른다.

 

예수님은 한센병 환자를 고치시고 나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다섯 번 이혼하여 정신적 상처와 고통을 받던 여인을 상담해 주시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나아가게 하신다. 군대 귀신 들린 자의 영혼을 해방시켜 주신 후 예수님은 그를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자로 살게 하신다. 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신 후 예수님은 그에게 영의 눈까지 열어주신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그대로 따라 한다.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았던 성전 미문의 40대 청년을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켰을 때, 그는 육체의 질병에서 치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렸던 정신적 자존감도 회복되어 자신이 굽신거렸던 건강한 사람들과 어깨를 함께 했고, 나아가 한 번도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했던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성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치유란 바로 이런 것이다. 육의 치료로 시작하여 항상 영혼의 회복까지 나아간다. 영과 혼과 육을 모두 유기적으로 바라보고 회복하는 것이 치유다. 하나님의 창조 때 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치유다. 영과 혼과 육이 조화롭게 다시 자리 잡는 것이 치유다. 고급 커피 마시고, 좋은 음식 먹고 힐링했다고 하는 세속의 말은 예수님의 힐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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