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두제자의 기준과 세 명의 애제자
열두제자의 기준과 세 명의 애제자
예수님을 포함하여 인류 4대 성인으로 불리는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의 공통점 하나는 모두 제자들을 두었다는 것이다. 석가는 많게는 1,000명이 넘는 제자가 있었지만 대표적인 제자는 사리불, 목건련, 아난다를 비롯한 10명이다. 이를 십대제자(十大弟子) 혹은 석가십성(釋迦十聖)이라고 한다. 공자는 3,000명이 넘는 제자를 두었고 그 중에서 뛰어난 제자를 72현(賢)이라 했고, 이 중에서도 최고 제자를 뽑았는데, 안회, 민자건, 자공을 비롯한 10명이다. 이들을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부른다. 소크라테스 또한 여러 제자들이 있지만 후대에 이름이 알려진 제자는 플라톤, 안티스테네스, 파이돈, 크세노폰을 비롯한 7명이다.
보통 예수님의 제자를 부를 때 우리는 열두제자, 혹은 십이사도라 한다. 예수님은 석가나 공자에 비해 제자의 수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또한 처음부터 12명은 아니었다. 누가복음에 보면 70명의 제자를 두시고 전도훈련을 시키시는 장면이 나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엄청난 사람들이 제자가 되려고 자원했고, 그중에서 70명 정도가 제자훈련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중이떠중이 제자들을 놓고 계속 걸러내신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한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가족과 재산과 전토를 버린 자만이 나를 따를 수 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나는 하늘의 떡이며 너희는 이것을 먹어야 영생한다”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섬뜩한 말씀에 수많은 제자들이 썰물처럼 고개를 흔들며 사라진다. 이때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이들이 열두제자다.
공자나 석가의 제자 10명의 기준은 탁월함이다. 분야별로 뛰어난 제자를 그렇게 뽑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두제자의 기준에는 그런 것이 없다. 심지어 열두제자 중에는 스승을 팔아넘긴 가롯 유다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열두제자는 무슨 기준으로 세웠다는 말인가? 탁월함이 아니면 의리인가? 의리가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머리가 좋았는가? 특별히 글재주가 있는 제자는 마태, 요한 정도다. 특별히 12명을 묶을 기준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다. 공자나 석가는 수많은 제자들 중에 탁월함을 보고 줄이고 줄여서 10명으로 수렴했지만, 예수님의 열두제자는 그런 것이 없다. 얼핏 보면 오합지졸 천태만상이다. 예수님만의 독특함이다. 원래부터 잘난 사람이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잘난 사람이 되는 원칙이다. 하나님은 못난 사람 부르셔서 잘난 사람 만드시는 분이다. 기독교가 인재를 키우는 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교회가 그런 곳이다.
예수님이 석가나 공자와 다른 점은 12명 중에서도 3명의 핵심 제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다. 이들을 애제자라 부른다. 예수님은 이 세 명에게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은밀하고 신비한 사건에 따로 동행시켰다. 변화산에서 신비체험을 하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는 세 제자에게만 보여주셨다. 왜 그러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세 사람이 훗날 기독교 역사에 결정적 역할을 남겼다는 점이다.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상징적 지도자로, 야고보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로,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책으로 담아 불멸의 종교로 만든 기록자로 기억된다. 분명한 사실은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 모두 스승 예수의 증인이 되어 순교했다는 점이다. 모든 제자가 자기 스승을 따라 살다가 스승처럼 똑같이 죽는 경우는 어떤 종교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