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판과 심판의 차이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편 – 비판론
비판과 심판의 차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이 본문은 목회자들이 조심스러워하는 말씀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할 때는 교인들에게 목회자 비판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메시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큰 은혜를 받았다. 그는 이 말씀을 받들어 이 세상에서 비판이라고 하는 것은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법정폐지론까지 주장했다. 이 세상에 모든 법정이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외쳤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과연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아무에게나 잘못한 것에 눈을 감아주라는 의미일까? 사람이 살다보면 진리와 오류가 분명히 있고, 선과 악은 분명히 있게 마련인데, 그런 것들을 다 가리지 말라는 뜻일까? 단지 이 말씀이 “너의 일이나 신경쓰세요” 혹은 “너나 잘하세요”라는 것일까? 나아가 한 때 어느 종교에서 유행시켰듯이, 모든 문제를 “내 탓이오”로 돌리라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결코 그런 뜻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판은 보통 학자들이 하는 학문적 비판 혹은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비평(critic)’으로서의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언급하신 비판의 의미는 ‘심판(judgement)’에 가깝다.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여 하나님 자리에 앉아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에게 속한 언어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는 여기서 말하는 비판은 검열관으로서의 비판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검열관이 누구인가? 의도적으로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는 전문가다. 공항을 통과할 때 그 사람에게 혹시 마약이 있을 것이라고 염두에 두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어서 흠을 잡는 사람들이다. 그들처럼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가능한 한 최악의 분석을 하고, 그 사람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고, 그 사람이 한 실수에 대해서 아주 인색해 하는 것, 그런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타인 위에 군림해서 심판자의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식의 비판을 말한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것인데, 사람이 하나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 놀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놀이를 하겠다고 하는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심판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심판한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교만을 부르고, 교만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인간의 죄성이다. 교만이 들어오면 끝이다. 신앙 생활은 교만이 들어오는 순간 다 끝난다고 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그렇다.
그런 자리에 앉아서 심판하지 말라는 뜻이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차원에서 비판을 금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오히려 심판하지 말라고 용어를 바꿔 써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심판할 수 없는 존재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심판해서는 안 되는가?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다. 심판한 그대로 너도 심판당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남에게 심판을 받고 싶지 않으면, 심판하지 말라. 그 심판 때문에 너도 심판을 받는다.
이 말씀은 사람은 다 똑같다는 뜻이다. 우리는 심판할 때 그 심리 속에 나는 너와 다르다는 차별 심리가 들어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을 때, 나는 그와 다르고, 저 사람이 실수를 할 때 나는 다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판하고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오직 다르다는 의식이 타인을 심판할 용기와 명분을 준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너나 그나 도토리 키재는 일이고, 오십보백보이며, 잘못하면 인과응보에 걸려 그 심판이 너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분명히 하신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은 모두가 본질상 똑같기 때문에 남에 대한 모든 심판은 언젠가 종말론적으로 필히 나에게 돌아온다. 어떤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해외에서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아내에게 이야기 했는데 아내가 비웃으며 놀렸단다. 칠칠맞지 못하여 물건 하나 관리하지 못해 그걸 잃어버릴 수 있냐고 했단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최근 아내가 이태리로 해외 여행을 갔는데, 남이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해 주는 사이에 자신도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남의 티끌을 보는 눈은 밝아도 자신의 들보를 보지는 못한 것이다. 그 누구도 남의 어떠한 잘못에 대해서 완벽하게 자신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다 똑같다. 내가 남을 심판하는 동안 나도 똑같이 심판을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