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을 땅에 둘까, 하늘에 둘까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 편
보물을 땅에 둘까, 하늘에 둘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7:19-24)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가치관의 문제다. 사실 신앙생활이란 어떤 대상을 믿는 행위이자, 그 대상이 요구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고 그렇게 세상을 좋아하고 돈 벌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서서 하나님이라는 분을 믿고 하나님이 원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졌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가치를 알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보이는 가치관과 보이지 않는 가치관인데, 한 사람이 동시에 상반된 두 가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가치관을 갖는다는 것은 거기에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뜻이다. 민족주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자유주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자유에 목숨을 바친다. 따라서 가치관은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고 동기이며 명분이자 목적이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보물 이야기를 하신다. 보물이란 물질 중에 가장 귀한 것이다. 보물이란 가치관이다. 이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둘까? 땅에 쌓아 둘까? 하늘에 쌓아 둘까? 가장 귀한 것, 그러므로 목숨처럼 여기는 것을 어디에 둘 것인가? 왜냐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의 말씀이 향하는 곳이 마음인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음의 세계를 제대로 짚어 주신다.
먼저 예수님은 ‘눈’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눈을 어디에 둘까, 어디를 바라볼까, 무엇을 바라볼까? 이것도 가치관의 문제다. 눈은 곧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곳에 눈이 가고, 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간다. 예수님이 앞에서 간음 이야기를 하실 때 눈을 빼라고 하신 이유가 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가면 몸이 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래서 무엇을 보는가가 중요하다. 눈은 몸의 등불이고 눈이 깨끗하면 마음도 깨끗하고, 마음이 깨끗하면 몸이 깨끗하다고 말씀하신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나빠진다.
예수님은 이어서 또 다른 가치관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누구를 섬겨야 할까? 이것이야말로 가치관의 핵심을 찌르는 물음이다. 누구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무릎 꿇고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섬기고 사랑할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다. 가치의 문제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구약의 역사를 염두에 두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한 구약성서 자체가 하나님과 우상과의 전쟁이라고 전제하고, 이를 새로운 용어로 제시하셨다. “너희는 하나님과 바알, 하나님과 아세라와 싸웠다. 내가 새 시대에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정리해 주마. 바알과 아세라와 그누스와 밀곰이란 한 마디로 ‘돈’이다. 돈의 신, 물질의 신, 권력의 신, 풍요의 신이다. 다른 말로 맘모니즘이라고 하자.” 예수님은 자신의 시대에 최고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이 돈임을 간파하셨다. 돈이 바알이고, 돈이 아세라다. 돈이 신이고, 돈이 우상이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정의하신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둘 중에 무엇을 섬길 것이냐? 가치관의 문제다.
예수님은 돈의 문제, 재물의 문제, 물질의 가치에 사람들이 빠져있다는 것을 아셨다. 단순히 무슨 신을 섬긴다, 조상을 섬긴다, 제사에 절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바알을 섬기는 것도 돈을 위함이요, 아세라를 찬양하는 것도 돈을 위함이다. 예수님은 아예 문제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신다. 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려는 종교적 행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돈에 대한 집착이라고 보셨다. 너의 우상은 바알이나 황제신이 아니라 돈이라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신다. 우리의 모든 눈과 마음이 돈에 가 있다. 보물을 하늘에 둘까, 땅에 둘까? 그리고 눈을 하늘에 둘까, 땅에 둘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의 마음을 돈에 둘까, 하나님께 둘까? 이걸로 요약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