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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을 네 신앙의 자랑으로 삼지 말라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 편

 

금식을 네 신앙의 자랑으로 삼지 말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6-18)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모습 중에 아주 보기 민망했던 세 번째 신앙행위가 금식이다. 금식이란 나의 고통과 애절함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기도법이다. 이것을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에 걸쳐 두 번이나 한다. 금식을 통해서 나의 내면의 고통을 하나님하고만 교통하는 것이다.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최고의 정성이다. 아무나 하지 못한다. 그리고 누구도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고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굳이 티를 내서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스런 정성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보인 행동은 얼굴에 인상을 쓰는 것이었다. 월요일만 되면 인상 쓰고 목요일만 되면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금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세수도 하지 않고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기도한다.

 

그런 모습이 예수님께는 아주 역겨우셨던 것 같다. 예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화장하고 세수하고 옷 제대로 입고 얼굴 찌푸리지 말라는 것이다. 금식한다고 티내지 말라. 그게 다 나팔이다. 금식기도에서 오직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보이는 것이다. 오직 일대일의 인격적인 관계만이 드러나야 하는데, 나팔을 불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금식기도의 본질이 아니다. 누구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가? 하나님 한 분인가, 수많은 사람들인가? 바리새인들의 금식행위 속에 하나님은 자리할 곳이 없다. 오직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과 박수만이 존재한다. 금식도 구제와 기도와 마찬가지다. 한 분에게만 인정받는 것, 한 분에게만 집중하는 것, 한 분 하고만 교통하는 것, 그것은 은밀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금식에 대해서는 예수님보다 8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기막힌 말을 한 적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금식하는데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자신들을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심지어 금식하면서 서로 싸우고 논쟁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는 것”이라 했다. 금식하면서 인상쓰지 말고 평상시의 삶을 살며, 나아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수직적 영성은 수평적 영성과 함께 간다.

 

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금식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집중이자 동시에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중이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말씀이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에게 티를 내지 말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나의 금식행위를 보여줌으로써 남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을 존중하는 태도다. 하나님께만 부담을 드려야지 왜 사람들에게 부담과 역겨움을 주느냐는 것이다. 금식은 하나님께만 인정받는 행위여야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자랑할 꺼리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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