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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이후의 삶 :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사는가

【갈릴리 예수산책】 기독교 구원론 – 마지막 편

 

구원 이후의 삶 :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사는가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가? 전쟁 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 구원이란 자리의 이동이다. 죄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의 옮김이다. 구원이란 신분의 변화이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의 상승이다. 구원이란 수준의 변화이다. 거듭남과 함께 시작되는 성화와 영화의 길로의 출발이다. 구원의 확신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다. 끊임없이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의 잔재들, 하나님과의 어색한 관계, 세상적 욕망의 잔뿌리들을 뽑아내는 싸움의 시작이다. 평생 계속될 과정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에게 일생에 한 번 있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회복의 사건이자, 이후 평생 계속되는 선한 싸움의 프로세스이다.  

 

구원이란 예수의 생명이라는 씨앗이 내 안에 들어온 사건이다. 그리고 자라기 시작한다. 예수의 유전인자(DNA)가 들어와 나를 자라게 한다. 송아지 안에는 소의 유전자가 들어와 있으므로 송아지는 소처럼 살아갈 수 있다. 강아지는 개처럼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유전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들어와 있어서 하나님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송아지나 강아지는 항상 넘어지고 쓰러진다. 이 세상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쓰러지고 넘어진다. 

 

문제는 넘어질 때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빨리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넘어졌을 때 해야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내가 왜 이러는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인데 이럴 수 있나, 난 왜 이토록 어리석고 미련한가“ 라는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번뇌하고 고뇌한다. 번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뇌하다 쓰러지고 넘어진다. 누구나 그러하다. 자책할 수 있고 부끄러워할 수 있으며 괴롭기가 한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보다, 나는 구원받지 못했나 보다, 난 어차피 안 되나 보다“ 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자책할 수는 있어도 자포자기는 안 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듯이,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셨듯이, 나도 나를 위로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God’s compassion)에서 비롯한 자기 자비(self compassion)이다. 내가 나를 향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고 불쌍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자비를 생활에서 가장 잘 적용한 말이 ”괜찮아“이다. 구원을 받았다 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괜찮다”는 선언이요, 나를 향하여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바울이 깨달은 이신칭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말을 오늘날 우리 말로 하면 “괜찮다고 보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우리가 결코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의 관계 속에 묶여 있음을 다음와 같은 강렬한 어조로 외치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한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비록 임종 때 딴소리 하고 헛소리 한다 하더라도 구원은 하나님의 소관이다. 구원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일관적이고 끈질기며 결국에는 승리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반복할 수 없는 두 가지 예식이 있다. 그것은 세례와 임직이다.

 

세례는 하나님의 구원과 거듭남의 응답이며, 임직은 하나님의 사명에 대한 응답이다. 임직은 오늘날 교회에서 두 세 번 바꾸는 사람들도 있어 많이 퇴색되었다. 그러나 세례는 여전히 일생에 한 번이다. 두 번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내 일생에 오직 한 번에 이루어진 일회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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