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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예수 : 예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갈릴리 예수산책】 기독교 구원론 - 6

 

땅 위의 예수 : 예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예수님의 모습을 놓고 많은 이름들이 붙여졌다. 무엇보다 이른 아침 미명이나 밤 늦은 시간을 찾아 항상 기도하는 습관 때문에 예수님은 신비주의자(Mythicist)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경에서 신비주의자란 하나님, 곧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엘리야, 엘리사로 이어지는 영적 전통이다. 특히 예수님은 환상을 보았고, 금식을 비롯하여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였으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친밀하고자 애쓰고 직접 소통하고자 하셨다. 신비주의자로서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셨다. 광야에서의 40일 금식이나,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의 기도, 변화산에서의 기도,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는 예수께서 얼마나 기도의 사람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예수님은 치유자(Healer)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고치시는 예수이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애 일정의 25퍼센트가 치유사역으로 채워졌다. 앞을 못 보는 자, 못 걷는 자, 손 마른 사람, 한센병 환자, 열병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리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베푸셨다. 예수님의 치유는 육체로부터 시작하여 정신과 영혼까지 아우르는 전인적인 회복이자 재창조였다. 육체로 인해 망가진 것은 육체만이 아니었다. 마음의 자존감이 망가졌고, 하나님과 소통할 영적 통로마저 막혀 있음을 보셨다. 육체를 고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정신 세계를 바로잡고, 영혼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예수의 병고침을 영어로 치료(cure)라 하지 않고 치유(healing)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예수님은 지혜의 스승(a wisdom Teacher)이다. 당시 유대교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의 모습은 놀라운 능력을 소유한 권위 있는 랍비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랍비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실제로 제자들을 두고 있는 스승이었고, 그가 가르친 내용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가치였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일반 민중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은 기가 막힌 비유를 통해 전달했고, 그 속에는 항상 이야기와 은유가 있었다.

 

그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편견과 선입관을 깨뜨리는 것이었고, 모세의 율법을 뒤집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새로웠으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전문적인 종교인들에 비해 가르침에 권위가 느껴지게 했다. 나아가, 단순히 설명으로만 그치지 않고 예수님은 이를 제자들에게 세상에 보내어 실습하게 했고, 적잖은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의 가르침 속에는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좁은 길을 추천했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게 했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서길 원했고, 하나님의 자녀이자 자신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질 것을 촉구했다. 이웃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하기를 원했으며,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까지 해석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가르침이었다.

 

예수의 파격적 가르침은 사회적 예언자(a social Prophet)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당시의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와는 궤를 같이 할 수 없었다.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는 식민지 사회에서 사회적 기득권을 공유하는 관계였고, 그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함께 누리는 지배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같은 소수의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는 구조에 대하여 예수님은 급진적인 비판의 날을 세웠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하여, 정치지도자들에 대하여, 과거의 낡은 전통적 가치에 대하여 과감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성전을 둘러엎으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하신 선언이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느니라“ 하신 주장은 예수를 이사야나 예레미야와 같이 선지자의 모습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조사한 결과는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요한이었다. 능력을 행하는 걸로 보아서는 엘리야 같고,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예레미야 같고, 과감하게 지배계층의 사람들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세례요한 같다고 느낀 것이다. 아무튼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예언자의 모습으로 비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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