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환영받을까?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편 – 천국자격론 3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환영받을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마음의 밭을 잘 가꾼 사람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사람을 분별할 때는 열매를 보고 분별하는데 열매를 보면 그 가지와 뿌리까지 알 수 있다. 사람의 근본을 알려면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열매가 나쁜 뿌리에서 좋은 열매가 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똑같다고 하신다. 사람도 나쁜 마음에서 나쁜 말이 나오고, 나쁜 말에서 나쁜 행동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속 깊은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사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집중하시는 것이 마음이다. 행동이 아니라 마음을 이야기하신다.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깨끗하고 단순한 마음, 이러한 마음들이 모든 신앙의 출발이자 행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름답지 못한 마음에서 아름답지 못한 열매가 맺혀지므로 그런 열매는 찍혀 불에 던져진다. 결국 행위라는 열매는 마음이라는 씨앗의 결과다.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자신의 선행을 기억할 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모든 선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25장에 주님께서 종말론 강의하실 때 확실한 답을 주신다. 천국에서 일어난 일을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 보좌 오른쪽과 왼쪽에 사람들이 있는데, 의인과 악인들이다. 오른쪽에 있는 의인들에게 하나님은 엄청난 칭찬을 하신다. 듣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다. “얘들아 너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나에게 얼마나 잘 해줬는지 몰라. 내가 너희만 보면 너무 너무 정말 보고 싶었다” 하고는 “이쪽에 앉아라. 오른쪽에 앉아라” 하신다.
오른쪽 사람들은 민망함을 견디지 못해 묻는다. “우리가 도대체 뭘 했는데요?” 하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신다. “너희가 말이지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줬지.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 줬지. 내가 나그네 되어서 외로울 때 나를 친구로 영접해서 대접해줬지. 내가 헐벗었을 때 너는 옷을 입혀줬지. 내가 병들었을 때 병문안 왔었지. 내가 옥에 갇혀졌을 때 고통당하고 사람들에게 비난 받고 할 때, 나에게 와서 위로해 주고 면회 왔지.”
그 소리를 들은 오른쪽 사람들은 얼굴이 화끈거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다시 묻는다. “제가 언제요? 제가 언제 주님이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언제 주님이 옥에 갇혔을 때 제가 면회갔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했던 것이 나에게 한 것이야.” 이 말에 오른쪽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자기가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선행과 섬김이 너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어서 계산할 생각도 못하는 자들이다.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를 정도로 그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들에 대해서 점수를 매길 생각도 못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하는 모든 행위는 기억을 못한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신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오른쪽 의인들은 그 은혜의 깊이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왼쪽 자리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께 버려진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억하고 계산하고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계산서를 내놓으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고통받는 사람을 하나님이라 여기는 사람들
하나님 섬김과 사람 섬김이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인간의 윤리가 곧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다. 하나님을 섬김은 곧 사람을 섬김이다. 사람을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다. 소자를 섬김이 하나님을 섬김임을 아는 자, 주님께 받아들여지리라. 사실상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윤리다.
지금 예수님이 주신 산상수훈의 말씀은 하늘의 말씀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위한 말씀이다. 이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해준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인데, 왜 다른 것에서 찾으려 하느냐?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받을 줄로 생각하느냐?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말로써 내가 주여, 주여 내가 무엇을 했나이다, 말로써 내가 주님을 노래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고통 받는 자가 곧 하나님이다. 고통받는 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 주변에서 힘들고 외로워하는 자들, 감옥에 있는 사람, 병원에 있는 사람, 아픈 사람, 배고픈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곧 하나님이다. 그들에게 잘하는 것이 나에게 잘하는 것이야. 놀라운 말씀이다.
영원한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말씀이다. 하늘을 말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하늘 이야기가 모두 땅의 이야기이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은 너무나 단순하고 의외의 말씀처럼 들린다. “사람들에게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