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galilee lake 2.jpg

최고의 윤리는 역지사지, 입장 바꿔 생각하기

【갈릴리 예수산책】 산상수훈편 – 황금률 2

 

최고의 윤리는 역지사지, 입장 바꿔 생각하기

 

황금률은 한 마디로 역지사지다. 입장 바꿔 생각하라는 것이다. 역지사지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그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나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이요, 동시에 나의 입장에 서서 나를 깊이 인식함으로써 타자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지혜다. 역지사지에는 나와 타자 모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타자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하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알아야 한다. 나만 알면 타자를 모르고, 타자만 알면 나를 망각한다. 주체와 객체에 대한 동시적 지식이 요구되는 지혜와 능력이 역지사지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시대든 항상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중심적 사고로 급격히 경도되어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타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타자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자의 입장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세운 삶의 기준에서 볼 때, 타자는 항상 불만족스럽고 원망스럽고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타자의 생각과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에고(ego)가 강하면 강할수록 타자에 대한 이해력은 떨어진다.

 

오늘날 지식 공부가 그렇다.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교육 뿐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불효한다. 학생은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저자의 생각을 알려 하지 않고 글자만 본다. 자기의 생각만으로 읽으려 한다. 저자의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나오면 항상 틀린다. 직장에서 신입사원들은 사장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혼이 난다.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한다. 사장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관심이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타자에 대한 공부가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 능력있는 사람은 모두 타자에 대한 이해가 탁월한 사람들이다. 외교가 그렇고, 비즈니스가 그러하며, 마켓팅이 그렇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들이 성공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 타자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컴패션(compassion, 긍휼) 훈련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전이시키는 공감의 능력이 중요한 시대다. 많이 알고 많이 외우는 지적 능력보다 훨씬 중요한 때를 맞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배우라는 직업은 역지사지의 능력을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직업이 아닌가 한다. 잠시라도 타자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처럼 좋은 역지사지의 훈련은 없지 싶다. 

 

한편,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보편적 이웃 사랑의 명령을 주셨다. 이웃 사랑의 방법 또한 역지사지로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역지사지는 타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알아야만 한다.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생각해 보고, 그 기준에 타자에 대한 사랑의 수위를 맞추라는 것이다. 나는 손가락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고통스러워한다. 내가 고통스러워하듯이 타자도 그럴 것이라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어깨를 살짝만 건들어도 기분이 불쾌하다. 내가 불쾌한 만큼 타자의 심기를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지사지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자기에 대한 지식이 만났을  때에야 발휘되는 관계의 놀라운 능력이다. 내가 아픈 만큼이라도 타자의 아픔을 이해하면 된다.

 

이 능력은 인간 사이의 윤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세계 또한 역지사지의 지혜가 매우 필요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골방기도, 구제, 금식, 하나님 나라 등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신앙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신앙적 관점, 신앙적 시각을 갖는다는 뜻이다. 신앙적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다는 말이고, 하나님의 시각이란 곧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기도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중에 하나님의 입장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원래 기도란 의미는 나의 몸을 떠나 멀리서 나를 바라본다는 의미의 ‘테오리아’에 왔다. 멀리서 본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입장 가까이 가서 보고자 하는 시도다. 말씀묵상이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모습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훈련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봉사와 섬김이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몸으로 따라하는 실천이다. 이 모든 신앙의 행위들은 알고 보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역지사지의 과정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나의 생각과 행동을 신앙화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런 입장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의 입장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편에서 생각해 보는 것, 이것이 신앙의 역지사지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모두 하나님에 대한 역지사지의 지혜가 부족한 데서 오는 시행착오들이다. 신앙생활이든 인간관계이든 세상지식이든 역지사지의 능력만 갖출 수 있다면 풀리지 않는 실타래는 없을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신중해진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3길 29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온라인헌금 계좌번호 안내
하나은행 : 202-910004-36305
예금주 : 갈릴리겨자나무교회

주일예배 : 오전 10시30분 / 신관 202호

수요성경공부 : 오전 11시 / 신관 202호

02-744-2022

  • YouTube
  • Instagram
  • Facebook

©2022 갈릴리겨자나무교회

bottom of page